세종대왕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훈민정음에 담긴 애민정신 | 세종대왕의 리더십과 명언 12선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말과 기록을 통해 백성을 먼저 생각한 애민정신과 리더십을 살펴봅니다.
《훈민정음》 창제, 《농사직설》 편찬, 공법 의견수렴,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세종의 정책과 삶에서 오늘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리더십의 가치를 정리했습니다.

살다 보면 좋은 리더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이끄는 힘일까요? 뛰어난 능력과 지식일까요?
아니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일까요?
세종대왕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답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리더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네 번째 왕으로 재위 32년 동안 훈민정음 창제뿐만 아니라 농업·과학·의료·출판·법과 제도 등 국가의 여러 분야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업적을 하나로 연결해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백성의 삶을 어떻게 하면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입니다.

문자를 몰라 자신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농민들이 실제 농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농사직설》을 편찬했으며, 세금 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는 많은 백성의 의견까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을 단순히 ‘한글을 만든 왕’으로만 기억하기에는 그의 리더십이 너무나 큽니다.

오늘은 세종대왕의 말과 기록, 그리고 실제 정책과 행동을 통해 백성을 생각한 리더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 출처 : 서울관광재단

백성을 위한 마음 —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세종의 리더십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애민(愛民)입니다.
애민이란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뜻합니다.
세종에게 백성은 단순히 왕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지탱하는 근본이었습니다.
세종 시대의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농업과 민생, 조세, 구휼, 의료 등 백성의 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세종은 농업을 국가와 백성의 삶을 지탱하는 근본으로 보았습니다.

“農者天下國家之大本也” “농사는 천하와 국가의 큰 근본이다.”

《농사직설》 서문. 세종이 총제 정초 등에게 《농사직설》을 편찬하도록 명했고, 서문에는 정초 등이 조선의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경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의 명을 받아 정초 등이 《농사직설》을 편찬했고, 그 서문에 농업의 중요성을 밝힌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하게는 “세종 시대 《농사직설》 서문에 나타난 농업관”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종에게 백성을 위한다는 것은 단순히 따뜻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농업을 발전시키고, 세금 제도를 개선하고, 재난에 대비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등 백성의 실제 삶을 개선하는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좋은 리더는 사람 위에 서서 지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어려움을 먼저 살피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어린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 《훈민정음》 창제

세종대왕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훈민정음》입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린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세종은 《훈민정음》 어제 서문에서 새로운 문자를 만든 이유를 이와 같이 밝혔습니다.
이 문장은 훈민정음 창제에 담긴 세종의 생각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문자를 만든 목적을 자신의 업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리더가 문제를 해결할 때는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실제로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하게” — 사용자를 생각한 리더

《훈민정음》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쉽게 익혀”, 그리고 “편안하게”라는 생각입니다.
세종은 새로운 문자를 일부 학자만 사용할 수 있는 어려운 문자로 만들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익히고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도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을 백성이 자신의 뜻을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을 해결하고, 사람들이 쉽게 익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ㅋ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소통의 장벽을 낮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좋은 정책은 전문가에게만 편리한 정책이 아닙니다.
정작 그 정책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먼저 생각하다 — 《농사직설》

세종에게 백성의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먹고사는 문제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농업이 국가 경제의 중심이었습니다.
농사가 잘되지 않으면 백성의 삶이 어려워지고 국가의 재정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종은 중국의 농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조선의 현실에 맞는 농업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각 지방의 농민들이 실제로 경험한 농법을 조사하고, 조선의 풍토에 맞는 농업기술을 정리하도록 했습니다.

《농사직설》 서문에는 세종이 각 도의 감사에게 명하여 주현의 경험 많은 농부들에게 그 지방에서 이미 시험해 본 농법을 조사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정초 등이 자료를 정리해 《농사직설》을 편찬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정책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세종의 농업정책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현장 중심 행정을 생각하게 합니다.

백성의 의견을 묻다 — 17만 2,806명의 공법 의견조사

세종의 리더십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공법(貢法)을 둘러싼 의견 수렴입니다.
공법은 토지의 비옥도와 농사의 풍흉 등을 고려하여 세금을 정비하려는 조세제도 개혁이었습니다.

세종은 이 문제를 왕과 신하들만의 논의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1430년에는 전국적으로 백성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당시 조사 결과 총 17만 2,806명의 의견이 집계됐고, 찬성 9만 8,657명, 반대 7만 4,149명이었습니다.

이 사례를 오늘날의 국민투표와 완전히 같은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왕권이 강했던 조선시대에 중요한 조세제도를 결정하면서 대규모로 백성들의 의견을 묻고 그 결과를 정책 논의에 활용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주목할 만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반수의 찬성이 나왔다고 해서 세종이 즉시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지역별 상황과 반대 의견을 살피고 제도를 계속 수정·보완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좋은 리더는 자신이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자료를 살피며 더 나은 결론을 찾아갑니다.

사회적 약자를 살피다 — 관노비 출산휴가

세종의 애민정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에서도 나타납니다.

세종 12년(1430) 10월, 관청에서 일하는 여성 노비가 출산 직전까지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보고 세종은 출산을 앞둔 관노비에 대한 복무 면제 조치를 명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출산하는 달과 출산 후 100일 동안 복무를 면제하도록 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세종실록, 세종 12년(1430) 10월 25일》

또한 세종 16년(1434)에는 출산한 관노비의 남편에게도 일정 기간 휴가를 주도록 하는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출산휴가제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습니만,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국가가 노동하는 여성의 출산과 산후 회복을 제도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은 분명히 주목할 만합니다.

오늘날의 교훈

좋은 리더십은 강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보호받기 어려운 사람의 입장에서 제도를 바라보는 것도 리더의 중요한 책임입니다.

과학기술도 결국 백성을 위해

세종 시대에는 과학기술에서도 큰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측우기, 수표, 앙부일구, 자격루, 천문 관측기구와 역법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단순한 왕실의 장식이나 호기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농업과 기상, 시간 측정, 천문과 역법 등 국가 운영과 백성의 생활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정확한 강우량 측정은 농업과 수리 정책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고, 시간과 절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농업과 국가 행정에도 필요했습니다.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 발전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실제 생활에 활용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의 교훈

기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불편을 해결하고 삶을 더 나아지게 할 때 기술의 가치가 커집니다.

백성의 억울함을 줄이려 했던 왕 — 법과 형벌

세종은 법과 형벌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도 신중함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사형은 더욱 신중하게 처리해야 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사형 판결과 관련해 여러 차례 재심과 신중한 검토를 강조하는 기록이 나타납니다.
이른바 삼복(三覆)은 사형 사건을 세 차례에 걸쳐 심리하는 제도로, 억울한 사형을 막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세종은 사형 사건을 신중하게 재검토하도록 하여 억울한 희생을 막으려 했다고 볼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날의 교훈

공정한 리더십은 원칙만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원칙이 실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살피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말과 기록 12선

인터넷 등 여러 매체에는 ‘세종대왕 명언’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좋은 문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실제 세종의 발언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문장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세종이 직접 쓴 글, 세종실록에 기록된 말과 명령, 그리고 세종의 정책적 행동을 보여주는 기록을 구분해서 소개합니다.

① “어린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출처: 《훈민정음》 세종어제 서문

“어린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문자를 몰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의 현실을 세종이 문제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훈

좋은 리더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②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출처: 《훈민정음》 세종어제 서문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훈민정음 창제의 출발점에 백성에 대한 세종의 문제의식과 배려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의 교훈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종종 공감입니다.

③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출처: 《훈민정음》 세종어제 서문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새로운 문자의 목적을 백성의 일상생활에 두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좋은 제도는 전문가에게만 좋은 제도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쉬운 제도여야 합니다.

④ “農者天下國家之大本也”

출처: 《농사직설》 서문

“농사는 천하와 국가의 큰 근본이다.”
이 문장은 세종의 명을 받아 정초 등이 《농사직설》을 편찬했고 그 서문에 이 문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농업이 백성의 생계와 국가의 근본이라는 당시의 농업관을 보여주고 있고 세종의 뜻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⑤ “주현의 늙은 농부에게 물어…”

《농사직설》 서문에는 세종이 각 도의 감사에게 명하여 주현의 경험 많은 농부들에게 그 지역에서 실제로 시험한 농법을 조사하도록 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정책에 활용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현장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장에 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⑥ “모두 방문하여 가부를 들으라”

《세종실록》 세종 12년(1430), 공법 관련 내용을 보면 공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세종은 백성들의 찬반과 의견을 폭넓게 듣도록 했습니다.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연구에서는 세종이 “모두를 방문하여 가부를 들으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훈

경청은 리더십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입니다.

⑦ 17만 2,806명의 의견을 묻다

《세종실록》 세종 12년(1430) 공법 관련 내용을 보면 세종은 공법에 대한 찬반 의견을 전국적으로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총 17만 2,806명이 참여했고, 찬성: 98,657명, 반대: 74,149명 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왕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백성들의 삶과 관련된 일이라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정책의 품질뿐 아니라 정책을 만드는 과정의 신뢰도 중요합니다.

⑧ “벼슬을 주는 것은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종실록》 세종 18년(1436) 3월 23일 관련 기록에 나오는 내용으로, 세종의 인사 철학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널리 소개됩니다. 세종은 관직을 개인의 명예나 특권이 아니라 국가의 일을 성취하기 위한 자리로 보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직책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⑨ 관노비에게 출산 전후의 휴가를 주다

《세종실록》 세종 12년(1430) 10월 19일 및 10월 25일에는 세종은 관노비 여성의 출산과 산후 회복을 고려하여 복무 면제 기간을 마련한 내용이 나옵니다. 특히, 10월 25일 기록에는 출산하는 달과 출산 후 100일 동안 복무를 면제하도록 한 내용이 나타납니다. 당시 사회적 약자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정책에 반영했던 것으로 보이는 내용입니다.

오늘날의 교훈

복지의 수준은 가장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납니다.

⑩ 관노비의 남편에게도 출산 관련 휴가를 주다

《세종실록》 세종 16년(1434) 4월 26일엔느 세종은 산모의 출산과 회복뿐 아니라 남편이 산모를 돌볼 수 있도록 휴가를 주는 제도를 마련한 내용이 나옵니다. 출산을 개인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과 관련된 문제로 바라본 사례입니다.

오늘날의 교훈

좋은 제도는 사람의 실제 생활을 세심하게 살피는 데서 시작됩니다.

⑪ 사형 사건을 신중하게 재검토하다

《세종실록》 사형·삼복 관련 기록, 세종은 사람의 생명이 걸린 사형 사건에 대해 신중한 재검토를 강조했습니다.
삼복제는 사형 사건을 여러 차례 심리하여 잘못된 판결을 막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법의 엄격한 적용과 함께 억울한 희생을 막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공정한 리더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한 사람의 피해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⑫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훈민정음》 세종어제 서문, 훈민정음 서문의 마지막 부분은 세종의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새 문자를 만든 목적을 거창한 업적이나 왕의 권위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제도와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의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훈

좋은 리더는 자신의 업적보다 사람들이 얻게 될 편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남긴 진짜 리더십

세종대왕의 업적을 하나씩 살펴보면 서로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입니다.

훈민정음은 문자이고,《농사직설》은 농업이며, 측우기와 자격루는 과학기술이고, 공법은 조세 제도입니다.
각 다른 분야로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의 삶을 더 낫게 만들려는 목적입니다.
세종의 리더십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

성과와 업적보다 백성의 삶을 먼저 살폈습니다.

② 백성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보는 리더

글을 모르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③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리더

기존의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문자와 기술, 제도를 만들어냈습니다.

④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리더

농민의 경험을 《농사직설》에 담고, 공법을 정하는 과정에서는 광범위하게 백성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⑤ 지식과 기술을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리더

과학기술과 지식을 국가 운영과 백성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세종의 위대함은 단순히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업적의 출발점에 ‘백성’이 있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종대왕은 약 600년 전의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은 지금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가진 지식과 능력을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는가?”
“함께하는 사람들의 불편과 고충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내린 결정이 가장 약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고 있는가?”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왕이나 정치 지도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의 부모에게도, 직장의 상사에게도, 조직의 구성원에게도,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자세입니다.

좋은 리더가 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 주변의 사람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살피는 것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걸음 움직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세종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가르침인지도 모릅니다.

출처 :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 어제 서문 ©세종신문

맺음말 — 백성을 사랑한 마음이 위대한 나라를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훈민정음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 더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의 자세입니다.
백성이 자신의 뜻을 표현하지 못하면 새로운 문자를 만들고,
농민들이 농사에 어려움을 겪으면 우리 땅에 맞는 농법을 정리하고,
세금 제도를 바꿀 때는 백성의 의견을 묻고,
출산하는 여성의 어려움을 살펴 제도를 바꾸고,
사람의 생명이 걸린 재판에서는 신중함을 강조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국가와 백성의 생활에 활용했습니다.

문자도, 농업도, 과학도, 제도도, 결국은 사람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의 삶을 돌아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좋은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세종대왕의 삶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리더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세종대왕의 말을 다시 읽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600년 전 한 왕이 백성을 위해 고민했던 마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새로운 리더십일 것입니다.

참고자료

  •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 공법 관련 기록, 관노비 출산 관련 기록, 형벌·인사 관련 기록
  • 《훈민정음》 세종어제 서문 — 훈민정음 창제 목적과 취지
  • 《농사직설》 서문 — 정초 등이 작성한 서문과 편찬 배경
  • 국립한글박물관 — 훈민정음 관련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사전 — 《농사직설》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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